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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정신과 독립운동, 김포의 정신으로

기사승인 2019.10.02  17: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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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방, 김포의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와 인물 이종근 의병

   
▲ 이병성 재령이씨문헌공파 종친회장

김포에 의병이 있었다
김포출신 이종근 애국지사 묘역,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올해 9월,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었다. 또한 이종근 선생의 묘에는 경기도지사의 이름으로 표지판을 세워 역사를 위해 헌신한 애국의 충정을 기리고 있다.

100년 전, 김포의 항일독립운동에 있어 의병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강상봉 의병(하성), 김경운 의병(하성), 신관수 의병(흥신리), 이종근 의병(구래리), 유명규 의병(당시 통진군 출신, 양촌 대곶 월곶 하성 검단포함), 조근봉의병(대곶) 등이 의병활동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관수, 이종근의병은 양촌읍 출신이다.
이제 독립100주년, 당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선 의병에 대한 연구와 김포지역출신 참가의 의의와 가치는 새롭게 조명되고 계승해야 마땅하다.

당시 이종근 의병은 18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1만 5천냥의 군자금을 모금했다. 계속해서 군도와 양총으로 무장하여 교하군 민판서로부터 양총 7자루와 탄환 200발 군도 2자루를 모집하는 활약을 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5년간 정배 생활을 하였다.

이종근 재판 판결문(융희 2년 형 제 183호)에는 경기도 통진군 양릉면 매가동 피고 이종근(40세)을 유형 5년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김포사람으로 정용대 의진에 참여했으며 김포, 강화에서 군자금을 모금했는데  의병활동은 의정부 강화 김포 이천 여주 단양까지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후손들의 이종근 의병 선양사업 활발
 김포항일의병 이종근 애국지사의 묘역은 한강신도시개발로 이전하게 되었다.
 연천군에 위치한 이종근 의병의 묘는 3.8선 표석을 지나 왕징면 작동리 47번지 선산 종중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날 김포항일의병 이종근 애국지사의 묘소를 찾는 길에는 이종근 의병의 선양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재령이씨문헌공파 이병성 종친회장과 이길수 부회장이 함께 했다.

이병성 종친회장이 밝히는 이종근 의병의 뿌리찾기는 198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종근 의병의 흔적을 찾아 노력한 이래 재령이씨 집안에서는 1980년대에 이종근 의병의 역사가 드러나고 알려지게 된다. 1992년 대한민국정부에서는 이종근 의병에게 지주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훈장을 추서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구래리 선산에 작은 산소가 있었습니다.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 후 한강신도시가 되면서 연천군 왕징면 작동리47번지 선산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2019년 추석 무렵 경기도에서는 애국지사 묘역을 찾아가는 길에 안내표지판과 당시의 의병의 활동을 담아 표지판을 이종근 의병 묘역에 설치하였다.   

 

조상들의 애국심과 헌신, 김포의 정신으로
1868년 5월 5일 양촌면 구래리 357번지(구래동 5226번지)에서 태어난 이종근 의병은 재령이씨 홍의공파 종친회 종손이며 종가집 장손이었다.

“제가 7-8세 때 75세인 194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기사생 이셨는데 강원도 정선에 숨어살았다고 합니다. 1943년에 강원도 정선에서 찾아 모시고와 광복 전인 1943년 3월 18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유해는 선산에 모셨습니다”

이병성 종친회장은 어린 시절에 이종근 의병을 보았다. 이제 재령이씨 종친회를 이끌며 그 문중을 넘어 이종근 의병의 활동을 널리 김포의 인물로 선양하며 후대에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선산에 재령이씨 종중 묘역을 조성하여 9대조부터 이종근 의병을 모셨을 뿐만 아니라 그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후대에 계승시키기 위해 학술 연구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의병활동 자금을 모금하러 이종근 할아버지가 다녔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사나이다워 청량도를 뽑아 위협적으로 일본 놈들을 단칼에 베어죽이겠다고 큰 소리를 하셨다고 전해들었습니다. 6척 장신의 무인다운 풍모를 가지셨다고 합니다”당시 이종근 의병은 “청량도할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활동무대는 통진 파주 인근으로 의병장인 정용대(강화)의 수하에서 활동하며 강화에서 김포까지 관할하며 통진에서 군자금을 모아 활동하다가 1908년에 체포되어 잡혀가서 감옥을 5년간이나 살으셨습니다. 총알, 총을 훔치고 본인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바쳤기 때문에 자식들은 어렵게 살았습니다. 종친회에서 위토를 주고 집을 지어줘서 살았습니다”

“이종근 할아버지의 자손 들은 아버지 이종근님이 어디 있는지를 몰랐다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소식을 받고 모시러 갔답니다. 이종근 할아버지는 한학을 공부를 했습니다. 이종근 생가 터에 서당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영향으로 의식이 있어 항일독립운동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포에서 의병활동이 있었다는 것은 그동안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광복을 위해 선열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부터 양촌읍에 삼일만세 공원 조성되고 그 이후 양촌읍 출신의 이종근, 신관수 의병의 비석을 세운 바 있다.

이제 재령이씨 한 종중의 인물 선양 사업을 시작으로 김포의 의병이며 애국지사인 이종근 의병은 김포의 소중한 역사와 인물로 널리 알리고 김포의 정체성을 찾아 선양되어야 할 것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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