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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는 소중한 인적자원들의 축적된 지식을 아카이빙 해야 합니다

기사승인 2024.09.28  13: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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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시는 역사문화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김포시는 소중한 인적자원들의 축적된 지식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김포시의회 유매희 시의원

2024년 9월 24일, 5~6대 김포문화원장을 역임했던 류지만 원장님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시의원이 되기 전, 지역의 문화기획자로 활동했을 때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우리 김포의 문화역사에 대해 자문받을 수 있는 분을 추천받았을 때 몇 안되는 분들중에 류지만 원장님이 계셨다.  

많은 사람들이 김포에 문화자원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김포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했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5천년 금쌀문화,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기 위한 무구한 전쟁역사, 문묘제례악의 중봉선생님, 문수산과 문수산성, 덕포진, 대(大)통진의 역사와 향교문화, 4개의 강줄기가 합쳐진 원천의 조강과 무구한 포구문화 등 김포는 오히려 무한한 역사적 가치를 안고 있는 땅이다.

다만, 제대로 연구와 개발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2019년 김포시 3·1만세운동 100주년 행사를 기획했을 당시, 항일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했다. 딱 3개를 구할 수 있었다. '김포항일독립운동사', '김포3.1 만세운동사료집', '김포 3.1 만세운동학술세미나' 책자였다. 놀랍게도 3개의 자료 모두 동일한 저자였다. 바로 김포의병기념사업회의 김진수 이사장님이셨다.  

만세운동하면 유관순 열사밖에 떠오르지 않아 난감해 하고 있을 때, 김포의 만세운동에 대해 평생에 거쳐 연구하고 집필해 주신 이사장님이 계셨다. 김진수 이사장님이 집필해 놓으신 '김포항일독립운동사'가 없었다면, 관련된 자문이 없었다면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포는 경서지역에서 2번째로 만세운동이 크게 벌어진 곳이며 1919년 3월22일~29일까지 약 8일간 15차례에 걸쳐 15,000명이 모였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김진수 이사장님의 오랜 고증으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냈고, 가장 큰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오라니장터가 있는 양촌에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이 설립될 수 있었다. 독립운동기념관은 예산이 있다고 원한다고 설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에 인정할 만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데 김진수 이사장님의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김포시는 2013년 비로소 개관할 수 있었다.        

2018년 중봉문화제를 준비할 때 역시 그랬다. 김포문화원이 김포아트빌리지 내로 거점을 옮기고 처음 진행되는 축제였다. 새로운 장소에 맞게 새로운 기획을 요구하셨다. 국악을 전공했기에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1호는 종묘제례악이요, 2호는 문묘제례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중봉 조헌 선생님이 문묘제례악에 모시는 선인 중 한 분이시라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런 분이 우리 김포에서 태어나셨다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그 긴 역사에 우리나라 현인 18명 중 한 명이셨으며 공자를 중심으로 정몽주, 이황, 이이와 함께 모셔져 있다. 이하준 원장님의 '중봉조헌 평전'과 초록색의 '중봉조헌에게로 가는길' 책이 없었다면 통상의 의미없는 축제를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김포에는 1차적인 고고학연구와 인문학적 자료가 매우 몹시 부족하다. 인문학적 자료가 있어야 2차 3차 컨텐츠들도 개발가능한 것인데 원천의 자료가 부족하니 그저 김포는 가진 것이 없다고 말 하게 되는 것이다. 김포의 역사와 관련된 의미있는 책이라고는 위 언급된 책들과 유영록시장때 8권의 '김포시사'와 김포문화원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정현채선생님의 '김포역사와 문화' 정도이다.

17년 조강포마을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분이 하시는 말이 ‘6·25전쟁을 직접 겪으신 어르신이 딱 1분 살아계신다’ 라고 했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어떠신지 모르겠다.

이러한 김포의 실정 속에 김포의 문화발전을 위해 평생을 애써오셨던 류지만 원장님의 부고 소식은 슬픔과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김포의 문화역사에 대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손가락 중에 한 분이 돌아가신거다.

김포의 문화발전을 위해 애써오신 연구자분들은 이제 연배가 적지 않으시다. 이 귀중한 연구자들이 만일 저버리신다면 우리 김포의 역사는.. 앞으로...

위 어르신들 외에 김포의 문화에, 특히 역사문화에 관심을 갖고 학술적 연구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김포는 그간 크고 작은 연구용역들을 해왔다. 워낙에 기초적인 자료가 없기에 나오는 연구결과들도 결국은 김포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안에서 나올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은 단기간에 되는 것들이 아니다. 김포시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가치들은 오랜 시간 지역에 애정을 갖고 연구해주셨던 몇안되는 향토사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의원이 되고 상임위장에서 지속적으로 발언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김포의 역사문화는 끝이다. 그분들의 지식을 우리 김포시는 확보해야 한다.’ 라고 말이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우리 김포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김포의 역사문화에 대해 연구하신 지식인들에게 김포시를 위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들의 축적된 지식을 이대로 사장되게 해서는 안 된다.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자산들을 발판으로 2차, 3차 컨텐츠를 개발하고 자원화 해야한다.

역사문화TF팀을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시간은 유한적이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선시대 신유한 문인의 「조강행」에 ‘고기 소금 과일 베와 쌀이 산을 이루니 이 항구는 하루에 천 척의 범선이 지나간다.’고 표현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 김포는 비옥한 땅과 강줄기를 지닌 한반도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지금의 김포시는 중립수역 사이에 두고 북한과 불과 800M 떨어진, 삼면이 철책으로 둘러 쌓인 군사보호지역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실정은 제한과 단점이 아닌, 강점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중에 하나는 김포시에 애정을 가진 문화연구가들의 노력이 담긴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력과 김포시의 행정적 지원과 지속적인 관광산업으로의 육성 노력이 있다면 우리 김포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다. 그 시작에 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노력해 오신 연구자들의 축적된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김포문화역사의 큰 별이 짐에 한없는 슬픔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

류지만 원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김포시의회 유매희 시의원

 

 

김포시의회 유매희 시의원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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